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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 유희경
더딘하루
2025. 5. 8. 15:49
도넛을 나누는 기분
바스락대는 봉투에서
도넛을 꺼내려는
밤의 버스 정류장.
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아도 좋고.
그런 밤의 버스 정류장.
자, 도넛을 꺼낸다.
그런데 어째서
도넛은 손끝으로 집는 거지.
아슬아슬하게.
까슬
까슬
까무룩
떨어지고 쌓여 가는 설탕 가루.
하얀 그림자를 딛고
발끝으로 서는 기분. 하지만
버스는 아직도 오지 않았어.
여전히 밤의 버스 정류장.
꺼낸 도넛을 반으로 가른다.
집으로 돌아가려 함과
집으로 가고 싶지 아니 함처럼.
정확히 나누었는지 묻지 않기.
버스가 오려는 방향 쪽으로
나란히 시선을 두는 것뿐이다.
반절만 건네고. 반절은 물고.
손끝을 비비면서 털어 내면서.
어디서 났는지 묻지 말기.
마실 거 없는지 묻지 말기.
밤하늘에 별이 있다고
사기 치지 말기. 그저
설탕 가루가 묻은 입술로
휘파람 불기. 밤의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개를 부르듯 이제
버스가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 창비청소년시선 특별 시집 <도넛을 나누는 기분>(2025)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