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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달려서 - 정재율

더딘하루 2025. 3. 29. 11:27

너무 열심히 달려서

 

 

나무에 붙은 허물이 우수수 떨어지는 여름이었다 매미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양 날개가 찢긴 채로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처럼 멀리 더 멀리 가서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너무 열심히 달려서 작별해야 하는 것들과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는데 비는 계속 내렸으면 좋겠어 새 신발을 신으면 어디선가 고무 냄새가 풍겼다 하천을 따라 번져가는 물방울들처럼 우리는 서로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어떤 것을 나눠 가질 수 있을까

 

그곳에서 네가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 작년에 버린 운동화를 묻어주기도 하고 차가운 흙 속에 두 손을 넣었다 상처 난 뒤꿈치의 딱지가 떨어지는 순간 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에 묻은 흙을 손수건으로 닦아 보았다 이곳에선 누군가 울면 옆 사람을 따라 쉽게 울 수 있었다

 

그런 날엔

아주 많이 걸어도 아프지 않았다

 

 

- 정재율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2022)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