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 중
호수 민박
민박에서는 며칠째
탕과 조림과 찜으로
민물고기를 내어놓았습니다
주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제 점심부터는 밥상을 물렸고요
밥을 먹는 대신
호숫가로 나갔습니다
물에서는 뭍에서든
마음을 웅크리고 있어야 좋습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면
동네의 개들이 어제처럼 긴 울음을 내고
안개 걷힌 하늘에
별들이 비늘 같은 빛을 남기고
역으로 가는 첫차를 잡아타면
돼지볶음 같은 것을
맵게 내오는 식당도 있을 것입니다
이승이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이곳은
공간보다 시간 같은 것이었고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